제주도립미술관을 포함한 5곳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리는 '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 폐막일까지 무료 입장
입력: 2025.02.10(월)
수정입력: 2025.02.13(목)
2024. 11. 26 - 2025. 02. 16
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The Drift of Apagi: The Way of Water, Wind, and Stars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공공수장고
제주아트플랫폼, 제주자연사박물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지난해 11월26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된 ‘2024 제 4회 제주비엔날레’가 오는 16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제주현대미술관 문화예술 공공수장고,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아트플랫폼까지 총 5곳에서 열린 ‘제주비엔날레’는 11일부터 폐막일까지 6일 동안 전시장 5곳을 무료로 개방한다. 이번 ‘제주비엔날레’ 주 전시 주제는 <아파기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The Drift of Apagi: The Way of Water, Wind, and Stars>로,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총감독을 맡아 역사 속 일화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를 예술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특히 제주 지역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인 만큼 총감독과 강제욱 전시감독 그리고 학계 전문가들이 남방문화와 북방문화가 충돌하는 동시에 공존하며 생겨난 독특한 지역 특성과 생태환경을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기획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총 14개국 작가 88명이 참여하며, 이들은 저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회 · 문화 · 정치 이슈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녹여내어 잔잔한 듯 거센 ‘물결’을 일으켰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상의 섬 ‘운한뫼’에서 항해를 떠난 가상의 인물인 아파기처럼 표류하며 물결을 경험하게 된다.
‘2024 제 4회 제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지난 개막식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본 전시가 열리는 제주도립미술관, 표류하며 이상향에 도달하는 여정 선보여
이번 ‘제주비엔날레’가 내세운 <아파기(阿波伎) 표류기>는 역사 일화로부터 가상 공간과 인물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일본 서기에 의하면 661년 4월 당나라에 파견된 일본 견당사 일행이 정처 없이 흘러가다가 탐라에 표착(漂着)하였고, 탐라왕자 아파기가 이들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일본에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제주의 정체성을 근거로 삼아 만들어낸 서사는 섹션 6개로 구성되었다. 각 섹션은 가상의 섬을 가리키며, 첫 번째 ‘운한뫼’에서 이파기가 항해를 시작함을 알린다. 아득하게 넓은 쿠로시오 물길로 노를 저어 나아가며 본격적으로 항해하는 ‘네워디(노질하는 곳)’를 거쳐 ‘사(새)’와 ‘바당(바다)’을 합친 이름을 가진 외딴섬 ‘사바당’에서는 유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여러 새 이야기가 이어진다. 별자리 노인성으로 불리는 ‘카노푸스’와 과거 서양인들이 제주도를 일컫던 ‘퀠파트’를 합쳐서 만든 조어 ‘칸파트’ 섬에서는 아파기가 항해를 통해 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마침내 낙원 같은 이상향 ‘누이왁’에 도착하며 끝난다. 그리고 제주어로 이야기꾼을 뜻하는 ‘자근테’에서는 항해와 표류로 깨달은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에필로그로 ‘아파기 표류기’를 마무리 짓는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린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오른쪽에 작가 박준식이 생태계 자원식물 연구자 김경훈과 함께 작업한 ‘도항(渡航) 추적자’가 전시되어 있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린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왼쪽 회화는 김남표 작가가 제주 애월 바다와 안나푸르나 산을 어딘가의 풍경으로 새롭게 상상하여 그린 <인스턴트 랜드스케이프-애월 바다> 시리즈와 ‘안나푸르나 #1’이다.
이러한 가상 이야기가 흘러가는 전시장 안에서 이리저리 표류하는 작품들은 제주 작가 9명이 포함된 한국을 비롯한 싱가포르 · 필리핀 · 대만 · 일본 · 독일 · 영국 · 미국 등 국내외 작가들이 제주 지역의 정체성 안에서 보편적인 문제들을 연구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됐다. 작품 형식은 회화 · 설치 · 조각 · 사진 · 영상 · 메타버스 · 인공지능AI · 프로젝션 맵핑 등 다양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여러 외래식물 표본들이 놓여 있다. 작가 박준식이 생태계 자원식물 연구자 김경훈과 함께 작업한 ‘도항(渡航) 추적자’이다. 아파기의 일본 방문 일화를 모티브로 한 ‘도항 추적자’는 제주도 항구에 외국 선박들이 태풍을 피하거나 관광을 위해 정박할 때 의도치 않게 외래식물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도 바다를 건너와서 지역 생태계가 변하는 현상을 추적하고 관찰한 결과물이다. 생물학에서는 본래 야생 서식지에서 어떤 개입 때문에 다른 장소로 옮겨져 그곳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현상을 귀화라 하고, 대표적인 귀화식물로는 모래냉이가 있다. 미국, 호주, 아프리카 모래밭에서 자라는 서양갯냉이Cakile edentula가 1998년 김녕해수욕장 근처에서 채집되어 모래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작품은 이외에 어떤 외래식물이 표류해왔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바로 옆에 걸린 대형 흑백 사진이 눈길을 끈다. 벌거벗은 어린아이들이 작대기를 쥐고 바닷속을 누비는 모습을 앤드류 테스타Andrew Testa가 담아냈다. 그는 2004년 지진 해일 발생 3주 전에 오랫동안 미얀마와 태국 연안의 섬 사이에서 유목 생활을 해온 모켄족을 촬영했었다. 이 사진 ‘모켄족The Moken’(2004)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주민이 처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현실’을 드러낸다. 전시장 끝에 3m가 넘는 대형 채널 세 개로 이루어진 영상 작품은 투라지 카메네자데Tooraj Khamenehzadeh의 ‘나는 노래로 불려지지 않으리I’m not a song to be sung’(2018-2019)이다. 채널마다 가득 채워진 물에서 페르시아 시인 샴루가 지은 시를 영어로 암송하는 사람들은 점차 어두운 고뇌에 찬다. 물에 가라앉은 세계는 가장 먼 고향, 하늘, 심연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들은 낭독이 끝나면 물에서 빠져나오듯이 화면에서 사라진다. 영상을 마주하는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한 그들은 ‘억압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상징하는 이란인들이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린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린슈카이Lin Shu Kai의 ‘도시 릭샤’ 뒤로 오소에의 영상 작업 ‘락 앤 로우: 해적, 휘청이는 배와 천일야화I’(2022)이 재생되고, 식민지 시대에 사람들이 억압받던 장소가 관광 명소로 변모한 이야기를 재조명한 리유 윈 이Liu Yun Yi의 ‘섬 어휘집: 잃어버린 기억의 귀환을 위한 가능성의 지도’(2023) 설치작품이 놓여 있다.
라이너 융한스 작가는 직접 컨테이너선을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선보인다. 특히 그는 2010년에 <몸바사 항해 프로젝트Mombasa shipping project>를 시작하며 6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선박 제작 기술을 탐구하였고, 오래된 나무와 현대 컨테이너를 결합하여 과거 장인정신과 현대 기술의 만남이 시사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소에Au Sow Yee 작가는 영국 식민지 이후 말레이시아에 각인된 역사와 그로 인한 혼종 문화를 신비한 해적 이야기와 동요로 풀어낸다. ‘도시 릭샤(인력거)’를 직접 타고 전시장을 표류하는 린슈카이Lin Shu Kai는 도시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꿈을 실현하며 유토피아로 향할 수 있게 안내하는 작업 <도시 릭샤 프로젝트의 섬 여행일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하우 시타 + 아니아 필라프스타-시타가 제주도를 직접 방문하여 숲속에 버려진 벙커에서 의식의 흐름과 사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표류를 체험하고 탐구한 결과물 ‘일제 강점기 군사 요새와 자연 환경의 관계에 대한 연구’(2024)를 종이와 체리목으로 제작하여 공개하였다.
제주 출신 작가 현덕식이 먹으로 그린 ‘유시도(流凘島: 녹아 흐르는 섬)’(2024). ‘나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는다’는 주제를 작품에 담아낸 현덕식 작가는 세속적 욕망이 응축된 얼음이 녹아 순수한 물로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순수함과 탐욕이 하나로 만나서 융합되는 순간을 탐구하였다. / Courtesy of Jeju Biennale
사물극 ‘라룽 페스티벌LARUNG FESTIVAL’을 ‘제4회 제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선보이는 아구스 누르 아말Agus Nur Amal.
지난해 11월26일에 열린 ‘제 4회 제주비엔날레’ 개막식과 함께 진행된 롤롤롤lololol의 퍼포먼스 장면 Courtesy of Jeju Biennale
지난 개막식에서 퍼포먼스를 벌여 돋보였던 작가들도 있다. 오브젝트 시어터 퍼포먼스(사물극)를 선보여 전 세계에 알려진 아구스 누르 아말Agus Nur Amal과 대만 작가 롤롤롤lololol이다. 먼저 아구스는 제주 전통 영등굿 의식에서 영감받은 새로운 사물극 ‘라룽 페스티벌LARUNG FESTIVAL’을 처음 공개하였다. 그의 사물극은 인도네시아 전역과 전 세계 해양 국가에서 자연에 감사하기 위해 두루 행하는 의식 ‘라룽 세사지Larung sesaji’와 제주도에서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영등굿으로부터 영향받았다. 두 전통 의식이 바다 제례라는 공통점에서 의미를 찾아 탐구한 아구스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관찰하여 얻은 아이디어로 사물극을 꾸몄다. 그리고 그가 인도네시아 웨스트 자바 지역에 있는 전통 농경 공동체 마을에서 우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담은 영상으로 ‘2022 카셀 도큐멘타’에서 화제가 된 ‘트리탕투TRITANGTO’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또 다른 작가 롤롤롤lololol은 공간을 인공 식물 화분, 어항, 조명 그리고 스크린과 프로젝트로 빚어낸 이미지들로 꾸몄다. 이 공간에서 작가는 마치 영혼이 깃든 초자연적인 나무와 직접 소통하는 샤먼이 된다. 심장 없는 식물 이파리에 부착한 심전도에 기록된 파장을 재해석한 롤롤롤은 일상에서 흔하게 들리는 앰비언트 사운드로 영적인 기운을 강렬하게 뿜어낸다. 자연을 관조하는 공간 ‘콘크리트 상자가 된 르웨탄호: 다시보기’(2024)에서 예상치 못하게 겪는 ‘표류’ 상황을 실제로 경험하는 느낌이 들 듯하다.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와 몽골에서 오는 철새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을 조명한 고길천의 <앞 못 보는 새> 시리즈. 바닥에 놓인 나무 상자에는 박제된 철새가 놓여 있다.
이외에도 표류하는 해양 쓰레기를 추적해 설치 작업하는 양쿠라, 제주 해변에서 구로시오 해류를 따라 흘러들어온 플라스틱 조각들을 수집하여 미술관 로비에 설치 작업한 김순임, 겨울을 나려고 이동하는 철새가 겪는 고통과 죽음을 조명하는 고길천이 있다. 해외 작가로는 제주와 대만이 가진 유사성을 연구한 왕더위Wang Teyu,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난민 이야기를 VR로 작업한 타오 야 룬Tao Ya Lun, 제주에서 한 달간 체류하며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제주의 문화를 대규모 목판화에 담아낸 판록 술랍Pangrok Sulap 등이 이번 ‘제주비엔날레’에 출품하였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참여작가들 작품뿐만 아니라 특별전 <누이왁>도 열려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 외 네 곳에서도 몰입형 전시와 사진전 등 다채롭게 열려
관객석을 모두 들어내어 텅 비고 어두운 극장. 제주아트플랫폼에서는 미디어 작가 부지현이 공간을 둘러친 초록빛 선 안 가득 찬 물에 서서히 들어가며 잠기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는 몰입형 전시를 선보인다. ‘궁극공간’(2022)은 수증기 온도로 만들어지는 안개와 원근감을 드러내는 레이저, 소리 그리고 눅눅한 냄새로 조성된 환경에서 관람객이 행위 주체로서 직접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게 이끈다.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제로 물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은 공포감을 경험하거나, 가장 깊은 자리에 배치된 푹신한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이들은 물속에서 편안하게 명상에 잠기는 듯한 감각을 신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작가가 만들어낸 신비로운 세계는 이리저리 흘러가듯 표류하는 사람들을 품은 채 서서히 변해간다.
제주아트플랫폼에서 선보이는 부지현의 미디어 아트 '궁극공간’(2022) / Courtesy of Jeju Biennale
이외에도 제주현대미술관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에서는 또다른 몰입형 인터랙티브 아트 <천 겹의 표류>를 선보인다. 작가팀 A.N(지하루+그라함 웨이크필드)은 인공 생태계 안에서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 그래픽이 물결치듯 변하도록 하여 이들이 단순한 ‘감상자’에서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도록 이끈다. 관람객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떠돌고 맞서고 발견하고 진화하며 자기 존재를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제주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 협력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특별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오는 3월30일까지며, 인상파의 시조 외젠 부댕과 그의 제자 클로드 모네를 비롯하여 피카소, 20세기 현대미술 대표작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앤디 워홀까지 서양미술 대가 89명과 그들 작품 143점을 만날 수 있다. (입장권은 별도 구매)
이렇듯 제주 지역이 지닌 정체성과 현대사회에 생겨나는 다양한 사회·문화·환경 이슈를 연결하여 예술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 ‘제주비엔날레’는 곧 막을 내린다. 특히 주 전시는 물결 따라 흐르는 여정 안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바람 혹은 별을 만나 길을 찾기까지 ‘표류’하는 경험 그 자체에 많은 의미를 담아냈다. 작가 88명이 예술적으로 성찰하여 주제 의식을 드러낸 작품과 마주한 관람객은 이들 하나하나에 이끌려 그 의미를 깊이 고찰하고 마치 나침반을 본 듯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설지 모를 일이다.
Words and photographs by Koeun Lee
Still. Courtesy of Jeju Bien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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