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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흐르는 시간, 다 사라져버린다' 그 찰나를 기록한 두 작가 홍순명과 유르겐 스탁

'저마다 흐르는 시간, 다 사라져버린다' 그 찰나를 기록한 두 작가 홍순명과 유르겐 스탁

입력: 2024.12.27(금)
수정입력: 2024.12.30(월)


빛을 머금은 꽃병 앞에 드리운 그림자, 시간이 흐르고 사라진다. 그리고 나와 누군가가 소소한 일상을 지내는 그때, 다른 어딘가에서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그 찰나를 예술 철학으로 풀어내어 ‘시간’이 지닌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유르겐 스탁Juergen Staack의 사진과 홍순명의 회화가 한 공간에서 만났다. 지난 12월24일까지 서정아트에서 선보인 2인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가 2017년에 쓴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The Order of Time>(2017)에서 비롯된 기획 전시이다.

우리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널리 알려진 대로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양자 이론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이 책은 이러한 ‘시간 흐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카를로 로벨리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인간은 서로 다른 차원 혹은 지역에서 각자 방식으로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이고, 이러한 속도 차이로 인해 이들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인간의 삶이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틈이 생기고 점차 커지면서 시간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틈’은 인간의 움직임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지속해서 노폐물 같은 쓸모없는 ‘엔트로피entropy(S)’가 늘어나는 동시에 기존 질서가 깨지면서 나타난다. 열은 항상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흐름이 정방향으로 이루어지고 무질서해지면서, 우주가 이전보다 더 예측할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게 된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이처럼 ‘앞으로’가 아닌 ‘뒤로’ 나아가는 한 방향 흐름을 ‘시간’ 개념으로 인식하여 과거와 미래로 구분 짓는다. 이렇듯 각자 속도를 따라 움직임으로써 공통된 하나가 아닌 수많은 흐름을 일으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 변화를 겪고 깨달으면서 시간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가 각자 경험하는 시간 흐름 속 ‘현재’가 지닌 본질과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홍순명Hong Soun.The tale of certain country-210723, 2021 / Courtesy of the artist and Seojung Art

흐르지 않는다고 카를로 로벨리가 언급한 ‘시간’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살피고 사유하기에 더없이 충분한 매개체가 같은 공간에서 교차하듯이 관람객들과 마주쳤다. 한국 화가 홍순명의 회화는 한 화면 안에 지극히 사적인 인물인 어머니 혹은 아내와 함께한 기억과, 같은 시간대 다른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보도된 장면이나 직접 찾아간 현장 모습이 뒤섞여 있다. 지난 서정아트 기획전에서 한쪽 벽면을 채운 <저기, 일상> 시리즈가 그렇다. 전시장에서 만난 홍순명 작가는 20년 넘게 작업해오면서 위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운동을 좋아하여 늘 동네에서 뛰곤 해서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는 걸으며 풍경을 바라볼 텐데 나와 어떻게 다른 경험을 할지 관심을 두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누구든 평범한 일상에서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 개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고, 홍순명의 회화에 자기를 겹쳐서 비추어 보며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또한 급변한 시대에 디지털 정보가 활발히 유통되어 지역이 다른 공동체의 삶을 같은 시간대에 들여다볼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움직임과 속도가 다른 듯한 삶의 방식을 접했을 때, 사회적 관점으로도 ‘시간’을 여러 의미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노예로 살다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지역에 뿌리내리게 된 정착민이 바다에서 노동하는 모습과 어느 날에 홍순명 작가가 바다를 여유롭게 거닐던 추억이 포개어진 회화 ‘A국 이야기’가 그렇다. 바다라는 공통된 장소에서 각자 다른 움직임으로 인해 벌어진 현실을 드러낸다.

지난 서정아트 기획 2인전에서 유르겐 스탁Juergen Staack이 선보였던 작품 중 라이트 스케치Light Sketch’ (2024)가 설치된 모습. photo by Jeon Byung-cheol / Courtesy of SEOJUNG ART. * Light Skectch Installation view

유르겐 스탁Juergen Staack. ‘SOLAR COPY / Shadows of Plants No. 019’,2019

생태계 혹은 사물이 변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찰나를 포착하는 독일 작가 유르겐 스탁의 사진과 꽃병 설치 작업은 ‘시간’에 초점을 두고 고찰하여 이를 깊이 사유하도록 한다. 특히 꽃병 앞에 펼쳐진 노트 위에 그림자가 머무르는 순간을 하루에 딱 한 번 관찰할 수 있는 작업 ‘라이트 스케치Light Sketch’는 유르겐 스탁이 직접 시간 흐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 꽃이 피고 시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주 잠시만 머무르고 이내 사라지는 그림자를 포착하게 되는 그의 설치 작업과 사진은 서정적인 감성을 보는 이에게 전하고, 그 아름다움은 우리 인식 속에 영원히 자리하게 된다.
생태계 속 변이를 ‘시간’ 안에 각인한 작업 <솔라 카피SOLAR COPY> 시리즈(사진 참고)도 눈길을 끈다. 유르겐 스탁은 사진 촬영을 계획하고 여름에 떠난 몽골 고비 사막에서 기후 변화로 비가 오고 서식 환경이 바뀌면서 자란 변종 식물을 발견하였다. 예정했던 촬영 대상을 곧바로 바꾼 그는 식물의 그림자를 현장에서 시아노타입Cyanotype 기법으로 기록하여 ‘솔라 카피’를 완성하였다. 어느 시점에 집중한 작업이면서도 평행세계라는 우주 가설을 바탕으로 여러 사회적 이슈를 품고 있는 사진이라고 ‘솔라 카피’를 설명한 그는 관람자가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깊이 사유하여 깨닫길 바란다고 전한다.

시간은 여전히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계속 흐르고 있음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자만의 매체로 궤적을 그려온 두 작가가 한 공간에서 접점을 이루며 ‘시간’ 개념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도록 풀어낸 서정아트 전시는 현실의 비현실이라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다.

서정아트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홍순명 화가(사진 왼쪽)와 유르겐 스탁 사진 작가

Words & photographs by Koeun Lee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Seojung Art
Still. Courtesy of Konrad Fischer Gal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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