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허, ‘움직이는 관람자’가 빠져드는 무한한 정신세계 < 8 >
입력: 2024.12.09(월)
수정입력: 2024.12.13(금)
2024. 11. 13 - 12. 21
8
한나 허Hanna Hur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빼꼼, 기웃기웃, 들락날락, 빙글빙글, …… . 전시장 한가운데에 하얀 벽 네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감싸듯이 세워져 있다. 그 안팎에는 각각 그림이 한 점씩 걸렸다. 회화는 총 8점이다. 이들은 각각 새로운 시공간으로 나아가는 ‘문턱threshold’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회화는 안과 밖이 공존하는 벽에 뚜렷한 순서 없이 걸렸고, 이는 관객이 자기만의 ‘동선’을 만들도록 이끈다. 하얀 벽 끝에 선 이는 양면에 걸린 그림을 동시에 바라보거나, 고무줄 끈을 한 번 꼰 듯이 숫자 ‘8’ 혹은 무한대 기호 모양으로 걸으며 그림을 감상해볼 수 있을 듯하다. 관람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계속 이어가면서 어느새 하얀 벽이 만든 외부와 내부를 스스로 새롭게 정의하게 될 듯하다.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에서 12월21일까지 열리는 한나 허 개인전 <8>은 대형 회화 8점을 설치한 작업을 통해 공간 너머 정신세계로 관람자들을 초대한다.
눈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한데 모아 깨달음을 얻는 시지각(視知覺) 체계를 시험하는 회화와 설치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온 작가 한나 허Hanna Hur는 뉴욕에서 주로 활동한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Y. 류와 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장혜정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상황situation’을 연출하였다. 누가 봐도 안쪽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하얀 벽 네 곳에 각각 붉은 회화를 걸었다. 그리고 바깥에서 보이는 벽마다 검은 회화 네 점이 등을 맞대고 있다. 한쪽은 불타오르고 다른 쪽은 재로 뒤덮인 상황이 그려지는 속에서, 되풀이된 격자무늬 ‘그리드grid’와 이를 비집고 튀어나올 듯한 복잡한 형상으로 채워진 회화는 언제라도 요동치는 변화가 일어날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한국계 예술가 한나 허는 이방인으로서 겪은 어지러운 감정들을 신앙에 기대어 다스렸음을 은유적으로 사각 캔버스에 녹여냈다.
만약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자가 처음 나선형 회화를 마주한다면 감정이 서서히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거나, 혹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어딘가로 향하는 듯한 하얀 행렬을 보며 심리적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을 듯하다. 누군가는 다른 회화를 이리저리 살피며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작가가 비추는 내면세계에서 나와 통하는 감정을 감지하고 공감에 이른다. 그리고 자유롭게 안팎을 오가는 사이에 ‘과연 나는 어느 곳에 서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사유하는 시간에 머물게 된다.
한나 허 작가가 이처럼 시지각 체계를 실험적으로 보여준 전시는 동료 작가 나미라Na Mira의 설치작이 함께하며 더욱 예술적 차원을 넓힌다. 건물 바깥에서 감상하게 되는 나미라의 신작 ‘Chord’(2024)는 빛이 희미해질 때 시야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붉은색 필름과 거울을 활용하여 상반된 두 곳이 비워지고 채워짐이 반복되는 현상학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이 작업을 바라보며 지각 너머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통로를 지나게 된다.
이렇듯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관을 경험하게 되는 한나 허 개인전은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가 앞으로 보여줄 행보와 맞닿는 기획이기도 하다. 2007년 개관 이래 두산연강예술상과 아트랩, 큐레이터 워크숍을 진행하며 꾸준히 한국 국적을 가진 신진작가와 젊은 큐레이터를 지원해온 두산아트센터는 앞으로 지원대상을 넓혀 한국계 디아스포라 예술가들도 적극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혀 내년 하반기 기획전 역시 기대감을 높인다.
한나 허(b. 1985)
Hanna Hur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한나 허는 최근 미국 뉴욕 드라큘라 리벤지(2024),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리스티나 카이트 갤러리(2023)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프랑스 보르도 현대미술관(2024)을 비롯하여 미국 아스펜 미술관(2022), 미국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2022)과 ICA(2021)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현재 LA 현대미술관, 해머 미술관이 한나 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나미라(b. 1982)
Na Mira
이번 전시에 협력 작가로 참여한 나미라는 미국 로렌스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최근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나미라는 미국 LA ICA(2024), 스위스 쿤스트할레 취리히(2024), 한국 서울 아트선재센터(2024), 한국 파주 리얼 DMZ 프로젝트(2023)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서 작품을 선보여왔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Y. 류
Christopher Y. Lew
이번 전시 공동기획자로 참여한 크리스토퍼 Y. 류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큐레이터이다. 지난 15년간 미국 주요 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류는 현재 큐레토리얼 컨설팅 회사 C/O: 큐레토리얼 오피스(C/O: Curatorial Office)를 설립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DOOSAN Art Center DOOSAN Gallery
서울 종로구 종로33길 15
관람: 화요일(Tue) - 토요일(Sun), 11:00 – 19:00
(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문의: 82. 2. 708. 5050
Words and photographs by Grace
Still. Courtesy the artist and DOOSAN Art Center DOOSAN Gallery
© 리아뜰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