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의 자유 | 지와 아트 레지던시, 바르셀로나 01
때로는 낯선 곳에서 보낸 하루가 먼 곳으로의 여행만큼이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하지만, 그것은 쉬우면서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이와 남편을 뒤로 하고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1998년, 런던에서 사진 공부를 끝내고 일본인 친구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추억이 깃든 바르셀로나는 내게 낯설지만은 않은 도시였다. 물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지만. 공항에 내려 외곽을 달릴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던 나는 도심으로 다가갈수록 이곳이 스페인 카탈루냐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묵을 숙소는 아트 레지던시인 d’Asturies 36 Jiwar creation & society. 폰타나 역에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지와는 정원이 있는 전형적인 바르셀로나의 상가주택 스타일의 건물로 12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1층은 상점, 2층은 주방과 거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으며 총 4명이 묵을 수 있다. 3층, 4층에는 운영자가 살고 있어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이곳은 중심지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바르셀로나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영감을 얻고 작업하면서 지내기에 아주 좋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정월대보름처럼 밝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출발해 헬싱키까지 8시간 30분, 헬싱키 공항에서 기다림의 4시간, 바르셀로나까지 4시간,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숙소까지 다시 1시간. 거의 18시간 만에 나는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긴 여행의 피로와 안도감이 몰려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지만 눈을 떠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겨우 새벽 3시 30분이었다. 여행 첫날 긴장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에 대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있다 보니 어느새 아침 햇살이 문밖에 다가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 내가 진짜 바르셀로나에 와 있구나.’
눈을 감았다 뜨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형형색색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새들의 지저귐도 감미로운 오페라의 선율처럼 들려왔다. 정원을 수놓은 꽃들과 아보카도나무의 향기가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건물 안으로 스며든다. 언제 이토록 오감을 자극하는 아침을 맞이해 본 적이 있었던가.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도시의 고층 아파트에서 살던 내가 피부로 자연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밀려오는 나무의 맑은 숨결을 오롯이 혼자서 느끼며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산호안 성당(The Church of Sant Joan)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비에리나 광장(Plaça de la Virreina)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밤이 되면 광장 계단에는 거의 변함없이 빨간 콜라 캔이 제물처럼 놓여 있었는데, 청소부의 손길이 닿아 차분하고 정돈된 이른 아침의 광장과는 달리 활발한 모습이 인상 깊다. 거리 공연하는 가수와 그의 노래에 맞춰 엄마와 함께 춤추던 세 살짜리 꼬마 관객. 광장을 광장답게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이 그곳에 있었다.
Words & photographs by Sairo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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