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선이 닿는 그 곳에 예술
저마다 다른 이유와 목적, 취향을 가지고 어딘가로 떠나기를 꿈꾼다. 누구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가치 있는 소비를 하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경험을 쌓거나 낯선 문화를 접하며 영감을 얻고자 하는 갈망으로 여행을 생각한다. 새로운 장소에 있을 나를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여정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계획하여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련의 과정 하나하나까지 모두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국내·해외 같은 물리적인 공간은 물론, 추억·시간·간접·내면 등 추상적인 개념에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이 단어를 붙여 말하곤 한다. 이처럼 포괄적인 범주 안에서 시각과 공간의 아름다움이라 일컬어지는 미술까지 찾아 나선다면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까?
자유와 일탈을 즐기는 청춘이 열정과 낙천적인 감성으로 만들어낸 시간에 동화되어 회상하거나 혹은 미래를 그려보고, 낯선 장소에 있는 그들처럼 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갈망과 상상이 간접 혹은 과거 여행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면 어떠할까. 디뮤지엄(D Museum)이 2017년 2월부터 5월말까지 열었던<YOUTH-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전시를 많은 이들이 관람했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최근 여행이 트렌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미디어를 통해 여행 작가의 그림, 도서, 전시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직접 참여가 가능한 강의와 드로잉 클래스 같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김물길 여행 작가는 673일간 46개국을 여행하며 400여 장의 그림을 그려 '아트로드'를 완성하였고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김병조의 경우는 SNS로 소통하여 다른 이들의 추억이 담긴 여행 사진을 그림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한다. 실크 스크린으로 아트 작업과 클래스를 진행하는 김정화 작가(Something Pleasant)는 여행과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고, 최근 핸드메이드 여행사진책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클로드 모네가 지베르니에 작업실을 꾸민 것처럼 조용한 마을로 옮겨 가거나 로코코 시대에 유명했던 프랑스 화가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처럼 일평생 여행하며 초상화를 그려 인정 받은 경우도 있다. 요즘은 아트 레지던시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과거의 그들과 같이 새로운 장소에서 자신의 감성으로 작품에 몰두할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하는 작가의 결과물에서도 우리는 낯선 공간에 관한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여행.
그럼에도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미술 여행이 있다면 역시 전세계 미술애호가와 작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유럽으로 향하는 '그랜드 투어'라 할 수 있겠다. 국제적인 미술 행사가 유럽 곳곳에서 열려 전시 일정에 맞춰 지역을 이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칭된 그랜드 투어의 유래는 1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까지 유럽 귀족 자제들의 필수 교육 과정으로 이탈리아 여행이 성행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로부터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예술을 비롯해 역사학, 문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출발 전에 이미 그랜드 투어를 위한 배경 지식을 착실히 쌓은 젊은이들은 마침내 이탈리아 땅에 도착하여 고전적인 음악과 미술을 생생하게 보고 들었으며, 활발한 사교활동을 통해 품위 있는 귀족으로서의 학식과 성품을 연마했던 것이다. 짧게는 3~4개월에서부터 길게는 무려 8년간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당시 여행자들은 이탈리아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초상화를 화가에게 주문했고 경이로운 고대의 건축물로 가득한 로마의 전경 역시 그림에 담아 본국에 돌아갔는데, 이는 요즘 우리가 흔히 여행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기념품을 사서 집에 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017년에 이렇듯 과거와 유사한 동선으로 풍성한 미술 행사가 열렸고 그랜드 투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한 해에 각종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는 경우는 2007년에 이어 10년만이기에 미술 여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57th Venice Biennale, 5~11월)를 시작으로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14, 4~7월(그리스 아테네)/ 6~9월(카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6~10월), 터키의 이스탄불 비엔날레(15th Istanbul Biennial, 9~11월) 그리고 프랑스의 리옹 비엔날레(14th Lyon Biennale, 9~12월) 순으로 개최됐다. 혹시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더라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5년 주기를 갖는 독일의 도쿠멘타를 제외한 각 행사는 2년에 한 번씩 열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www.labiennale.org) 일정이 2019년 5월11일~11월24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 계획을 갖고 있다면 아트 비엔날레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17세기 유럽 여행자들처럼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예술을 직접 눈에 담는 그랜드 투어를 떠나보자.
Words & photographs by Ko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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