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하트, 반(反)엠마하트 | 바라캇 컨템포러리, 서울
서울 삼청동 언덕길을 느긋하게 걸어 바라캇 컨템포러리로 들어선다. 유리창 너머 눈 부신 햇살이 비껴들어 갤러리 벽면에 걸린 작품들에 비치니, 그곳으로 시선이 향한다. 거기에 ‘다른 이’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며 자기를 숨기고 싶은. 어찌할 줄 모르며 지나치게 말이 많아지는 이. 바로 작가 엠마 하트이다. 곱지 않은 눈총이 작가에게 쏠리는 ‘Big Mouth’ 작품과 한참을 마주 본다.
2021.11.24 - 2022.2.6
BIG MOUTH
바라캇 컨템포러리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2022년 1월23일까지 영국 출신 조각가인 엠마 하트 개인전 《BIG MOUTH》를 선보인다. 창의적인 여성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Max Mara Art Prize for Women’ 수상자인 엠마 하트. 한국에서 갖는 첫 전시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언어와 행동 규범을 세라믹과 석기로 만든 사물로 은유하여 이야기를 건네듯 안내한다. 그리고 작품 10여 점이 설치된 공간에는 제약이 따르는 언행을 강요받는 상황과 경험이 담긴다.
전시장 문을 열면 표지판처럼 ‘You’re All over the Shop’ (2021)이 서 있다. 그리고 비슷하게 손가락이 가리키는 듯한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에 놓여있다. 이끈다. 손가락을 따라 관람자도 움직이며 작품과 가까워진다. 혹은 이쪽을 향하여 ‘손가락질’하며 밀어낸다. 마치 사람 사이에서 다가가려고 애쓰거나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거나 때로는 거리를 두려는 인간관계를 보는 듯하다. 특히 계층별로 사용하는 언어와 비언어를 척도로 삼아 사람을 판단하고 가르는 혼란스러운 상황마저 그려진다. 연출된 무대와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은 바로 작가이다.
여전히 계급 사회인 영국에서 엠마 하트는 노동자 계층으로 나고 자랐다. 미술을 공부하며 중산층 이상이 주류를 이루는 예술계에 발을 들였다. 그럼에도 작가 주변은 가족, 친구, 주거환경 등 전부 노동자 삶뿐이다. 노동자 계급은 특히 사람을 대할 때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상위 계급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예술가로서 만나는 사람들은 품위 있는 태도와 제스처를 취하고 어투, 억양 그리고 언어를 격식 있게 구사한다. 작가는 그런 무리에 있으면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괴리감이 자꾸 들었다. 줄곧 불안해하며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허풍을 떨었다. 그렇게 자의식에 사로잡힌 작가는 스스로 ‘떠버리Big Mouth’라 칭한다. 동떨어진 분위기에 짓눌리며 언행을 꾸미면서도, 그 모습은 거짓이라는 생각으로 의식이 분열된다. 작가는 이런 가짜 모습이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가면 증후군’을 전시 《BIG MOUTH》에서 이야기한다.
찬찬히 둘러본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만나 대화하듯, 관람자는 작품에 맞춰 서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한다. 개인이 집단에서 평가되는 상황과 심리가 읽힌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라캇 컨템포러리의 허미석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계층마다 몸에 밴 행동 양식을 나타내는 기호체계가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는 능력인 문화 자본을 상징하는 측면도 조명한다고 밝혔다. “언어와 이를 제외한 모든 소통 수단이 되는 비언어는 기호이다. 신호를 주고받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더 넓게는 취향과 집단이 향유하는 문화까지 그 범주 안에 든다. 이런 기호가 체계를 갖추어 사회에서 행동 규범 역할을 하며, 이를 사용함에 따라 사람이 계급으로 나뉜다. 결국, 인간사회에서 행동 규범은 권력으로써 영속한다. 이번 작업은 엠마 하트가 계급 사회를 관찰하고,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회가 관계를 맺는 방식을 고찰한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또다시 손가락을 따라 계단을 올라 도착한 2층 전시장에는 단순한 기호인 말풍선들이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 분열된 이중 자아가 모두 드러난다. 언어 기호로 나타낸 눈, 코, 입, 표정 역시 또렷하다. 그리고 언어 유희. 사회 현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잔인하게 보여주는 코멘트를 툭- 던진다. 관람자는 당혹감에 빠지고 만다. “Dummy(가짜)? 양다리? 입방정?”
이중 자아를 가리키는 Dummy와 입방정. ‘양다리’는 노동자와 예술가 계층에 걸쳐진 자기를 표현하려고 엠마 하트가 한국어 중에서 고른 어휘이다. 그 외에도 상류층이 쓰는 우아한 posh 언어가 아닌 노동자 계층이 흔히 입에 달고 사는 OiOi(어이어이~)도 눈에 띈다.
이제 난간 앞에 서서 1층 전시장을 내려다본다. 작품과 작품이 상호작용하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관람자를 가운데 두고 앞에서는 쏘아보며 손가락질하고 등 뒤에서는 “너는 가짜Dummy”라 말하고 있다. 결국, 엠마 하트와 같은 처지에 놓이면서 완전하게 동화된다.
전시 프리뷰에서 이화령 디렉터(바라캇 컨템포러리)는 엠마 하트가 실제로 ‘Big Mouth’ 같은 성격이라고 전하였다. 평소 말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이는 앞서 3월에 전시한 마이클 딘 역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마이클 딘도 영국 출신이며 언어를 중심으로 작업한다. 그리고 예술계에서 몇 안 되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다. ‘영국’, ‘노동자 계급’, ‘언어’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엠마 하트는 마이클 딘과 다르게 경쾌한 색감과 조형으로 작품 세계를 펼친다. 이 점 또한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되겠다. 전시는 2월6일까지.
엠마 하트 (Emma Hart, b. 1974, United Kingdom)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엠마 하트는 2016년 막스마라 여성 미술상(Max Mara Art Prize for Women)의 수상자이다. 2015년에는 시각 예술 부문에서 폴 햄린 재단Paul Hamlyn Foundation 상을 받았다. 슬레이드 미술대학Slade School of Fine Art, UCL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여 2004년 석사학위를 받았고, 2013년 킹스턴 대학Kingston University에서 순수미술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트는 서머셋 하우스 (런던, 2021); 쿤스틀러하우스 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 2019); 쿤스트하우스 함부르크 (함부르크, 2018); 영국 정부 아트 컬렉션(GAC) 전시 (런던, 2018, 2019); 영국 예술위원회 투어 전시 (요크셔 조각공원, 2018); 리빙아트 뮤지엄 (레이캬비크, 2016) 등 단체전에 참여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Banger》(프룻마켓 갤러리, 에딘버러, 2018); 《Mamma Mia!》(화이트채플 갤러리, 런던/콜레지오네 마라모티 갤러리, 레지오 에밀리아, 2017); 《Love Life: Act 1》(조나단 밸독과 협력작업, 피어 갤러리, 런던, 2016); 《Giving it All That》 (폴크스톤 트리엔날레,켄트,2014); 《Dirty Looks》 (캠든 아트 센터, 런던, 2013)가 있다. 엠마 하트는 퀸 엘리자베스 공원에 신축 예정인 UCL대학 건물 입구에 첫 영구 전시 조각을 설치한다.
바라캇 컨템포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7길 36 /Tel +82 2 730 1948
Hours Tuesday – Sunday, 10 AM – 6 PM
2016년 서울에 문을 연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주목해야 할 동시대 미술 흐름을 가장 앞서 전시하는 공간이다. 특히, 중요성이 있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비평적 전시 기획에 주력한다. 관객들에게는 중요한 이슈를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서유럽과 미국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등 새롭게 눈여겨볼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마찬가지로 국내 뛰어난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고 장기적으로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동시대 미술 전시뿐 아니라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높은 수준의 예술 콘텐츠를 보급하고 확산하기 위해 담론, 비평, 출판, 기획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국제적 갤러리로 나아가고자 한다. 주요 전시로는 셰자드 다우드, 양아치, 마이클 딘, 마크디온 개인전 등 개최하였다. 2022년에 예정된 전시는 3월 알렉스 베르하스트Alex Verhaest를 시작으로 네빈 알라닥Nevin Aladag, 김성환, 엘 아나추이El Anatsui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Words & photographs by Koeun Lee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Barakat contempo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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