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편집: 2024년05월16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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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색채를 담은 예술로 치유하다 | 박서보, 국제갤러리

자연 색채를 담은 예술로 치유하다 | 박서보, 국제갤러리

감빛이 여물고,
유채꽃이 만발하였다.
단풍은 붉게 타오르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수평선을 보았고,
섬이 길게 누워있는 모양을 서로 어울리게 담아냈다.
캔버스 위에.

온화한 미소를 띤 박서보 화백 뒤에는 잘 익은 홍시빛  작품 Ecriture (描法) No. 080821, 2008.

온화한 미소를 띤 박서보 화백 뒤에는 잘 익은 홍시빛 작품 Ecriture (描法) No. 080821, 2008.

올해 아흔 살인 박서보 화백은 9월15일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편안하게 여행 이야기를 풀어 갔다. 설악산, 제주도,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그리고 독일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며 둘러본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였다. 삭막하게 여겼던 한강 다리를 조명이 비추는 밤에 바라보며, 사람이 만든 풍경에서 영향받은 색과 형태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자연스럽게 풍경이 떠오른다. 작품과 마주 서서 상상했던 모습을 그 위에 살짝 포개 보았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요즘에도 지팡이를 짚고 서서 하루 5시간은 연필로 선을 긋는다. 2019년부터 그린 200호 작품을 연말쯤 완성할 것 같다. 근데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넘어진다. 며칠 전에도 넘어지면서 얼굴을 다쳐 꿰맸다. 그래도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 내 인생을 걸고 완성하고 싶다.”

국제갤러리는 10월31일까지 K1에서 단색화 대가인 박서보 개인전 <PARK SEO-BO>를 진행한다. 박서보와 국제갤러리는 2010년 첫 개인전에서 연을 맺고, 이후 단색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여정을 함께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색채 묘법’으로 잘 알려진 작품 16점을 소개한다. 박서보가 자연에서 발견한 선명한 색감과 도시 경관에서도 찾아낸 아름다운 형상이 혼재된 작품이다. 그림이 걸린 전시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자연을 감상하며 한결 치유되는 여유를 갖게 될 듯하다.

취재 열기로 뜨거웠던 전시장.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작품 앞에 선 박서보 작가 모습을 앨리스 기자도 카메라에 담으면서 작품 설명을 귀담아듣고 있다.

취재 열기로 뜨거웠던 전시장.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작품 앞에 선 박서보 작가 모습을 앨리스 기자도 카메라에 담으면서 작품 설명을 귀담아듣고 있다.

박서보 대표 연작 <묘법>은 1970년대 초기(연필) 묘법, 1980년대 중기 묘법,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후기(색채) 묘법으로 구분한다. 연필 묘법은 행위를 반복하며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 박서보는 둘째 아들이 공책에 글씨 연습을 하다가 네모 칸 밖으로 글씨가 여러 번 삐져 나가자 빗금을 치던 모습에서 체념한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에서 묘법을 착안하였다. 색채 묘법은 간격이 일정한 고랑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하여 자연과 합일을 추구한다.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는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흑연 심으로 이뤄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연필로 긋는 행위로 인해 젖은 한지에는 농부가 논두렁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밀려 산과 골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물기를 말린 후, 눈으로 봤던 자연경관을 담아내기 위해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힌다. 이렇게 연필로 그어내는 행위를 반복해 완성한 작품에는 축적된 시간이 입혀지고, 작가가 사유한 철학으로 직조된 리듬이 생성된다.

박서보 회화에서 색은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전후 시기에는 급변하는 세계에 정서가 불안해진 상태를 검은색으로 표현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서양 기하 추상에 대응하면서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을 고민하여 오방색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비워 냄’을 몸소 실천하며 색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흰색을 선택하였다. 그러던 그가 2000년 이후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을 캔버스에 입혔다. 이 급진적 시도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그가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문명이 변하는 속도를 더이상 따라잡을 수 없어 위기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돌파구는 색이라고 밝혔다.

벚꽃, 유채꽃, 와인빛이 연상되는 작품들. 밝은 형광초록색은 밤섬과 한강 다리를 비추는 조명에서, 중간에 음악적으로 파인 사각형들은 다리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 /photo by Park Seo-Bo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벚꽃, 유채꽃, 와인빛이 연상되는 작품들. 밝은 형광초록색은 밤섬과 한강 다리를 비추는 조명에서, 중간에 음악적으로 파인 사각형들은 다리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 /photo by Park Seo-Bo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140410, 2012, mixed media with Korean traditional paper ‘hanji’ on canvas, Photo by Park Seo-Bo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140410, 2012, mixed media with Korean traditional paper ‘hanji’ on canvas, Photo by Park Seo-Bo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lt;PARK SEO-BO&gt; 전시 전경. Photo by Park Seo-Bo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PARK SEO-BO> 전시 전경. Photo by Park Seo-Bo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박서보는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직접 경험하여 얻은 색과 형태를 작품에 온전히 담아 관람객에게 전달할 뿐이다. 물론 그들도 이미 체험하여 알고 있다. 그 대상은 자연이다. 삼청동 풍경을 면하는 창이 난 전시장에서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을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K1의 안쪽 전시장에서는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이 펼쳐진다. 그는 캔버스에 정적인 고요함과 리듬감 있는 활력을 남겨, 보는 이가 가진 스트레스를 흡인吸引한다. 여행지나 강가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는 스스로 작품을 ‘흡인지’라고 밝혔다. 이 흡인지에 사용된 한지는 작가가 추구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일맥상통하는 매체이다. 그렇기에 박서보가 수행하며 완성한 결과물인 작품과 마주 섰을 때 그가 의도한 대로 우리는 지친 마음이 치유될 테다.


박서보 Studio Visit / Video by ArtDrunk / Courtesy of Kukje Gallery

박서보(b.1931)는 1962년 처음 강단에 선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62-1997) 및 학장(1986-1990)을 역임하였다. 2000년에는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및 고문(1980)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0년 들어 세계 주요 컬렉터들을 비롯한 미술계에서 단색화로 주목받으며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영국 화이트큐브에서만 2021년 3월 전시를 포함하여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비롯, 같은 해 독일 랑엔 재단, 2006년 프랑스 메트로폴 생떼띠엔느 근대미술관 등 유수한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 외에도 1975년 <제1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그리고 1963년 <제3회 파리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 다수 참여하였으며, 2018년 도쿄 화랑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 중국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 <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 2016년 브뤼셀 보고시안 재단 <과정이 형태가 될 때: 단색화와 한국 추상미술>,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단색화>, 2012년 국립현대 미술관 과천관 <한국의 단색화>, 1992년 영국 테이트 리버풀 <자연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 속에 깃든 전통정신> 등 여러 그룹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주요 작품 소장처는 국립현대미술관, 도쿄도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그리고 홍콩 M+미술관 등이다.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Seoul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4, 48-10(본관, 신관) /Tel. +82 2 735 8449
Hours Monday–Saturday, 10 AM–6 PM / Sunday & National holidays, 10 AM–5 PM

국제갤러리는 1982년에 개관하여 국내를 대표하는 화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헬렌 프랑켄텔러, 샘 프란시스, 짐다인, 프랭크 스텔라, 안젤름 키퍼, 요셉 보이스와 같은 해외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였다. 특히 2003년에 세계적인 작가 빌 비올라와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을 개최하여 언론과 관람객들로부터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갤러리는 일찍이 한국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하여 1988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바젤에 참여하였다. 갤러리가 소개한 한국 작가들은 세계 컬렉터와 미술계에서 주목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베니스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와 같은 세계적인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앨리스 기자: 취재 열기가 가득했던 박서보 개인전을 다녀왔습니다. 10월1일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박찬욱 감독 사진전 기사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3주 후에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서 미술 현장 소식을 전할 예정입니다.]

Words&photographs by Dongeun Alice Lee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Video by ArtDr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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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유영하는 자아들이 자기 ‘앨리스’를 마주하다 | 이동은, 여주시립미술관 아트뮤지엄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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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든 빛이 드러내는 시공간으로 초대합니다 | 서승원, PKM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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